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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초는 법과 신뢰이며,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회귀한다.”
—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본 이야기는 허구이나,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형님, 진짜 이번엔 확실합니다. 선관위 서버 까야 된다니까요?”
서울 변두리의 한적한 순대국밥집. 평소라면 퇴근길 직장인들의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을 공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민우는 한 손으로 뚝배기를 휘저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화면을 쉴 새 없이 검색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빨간색 썸네일에 거대한 글씨로 [충격!] OO구 투표용지 부족 사건, 배후는 누구인가?라는 문구가 번쩍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형석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선거 당일에 멈춰 있는 듯했다.
“민우야, 그냥 선거철마다 나오는 행정 실수라잖아. 투표용지 몇 장 부족했던 게 무슨 나라 뒤집힐 음모냐?”
“에이, 형님은 아직도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보시네.”
민우가 코웃음을 치며 스마트폰을 형석의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것 보세요. ‘정의의 스피커’ 채널 라이브 방송인데, 지금 동시 시청자가 5만 명이에요. 이 사람들이 다 바보입니까? 이번에 저쪽 진영에서 조직적으로 조작한 게 분명해요. 댓글 좀 보세요. ‘절대 용서 못 한다’, ‘교도소로 보내라’ 장난 아니라니까요?”
실제 세상은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이 혼란은 ‘대박 비즈니스’였다. 같은 시각, 여의도의 한 공유 오피스. ‘정의의 스피커’ 채널을 운영하는 김 감독은 모니터 가득 차오르는 후원금(슈퍼챗) 메시지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XX청년]님이 5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진실을 밝혀주세요!”
[끝장X]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끝까지 싸웁시다!”
“역시, 선거 불복 소스가 최고야. 조회수 나오는 속도가 다르네.”
김 감독에게 이념이나 정책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타협과 통합은 곧 ‘매출 감소’를 의미했다. 자극적인 음모론을 던질수록, 상대 진영을 악마화할수록 조회수가 올랐고 통장 잔고는 두둑해졌다.
정치권도 이 흐름을 기가 막히게 타고 있었다. 다음 공천을 노리는 신인 정치인 조 의원은 온건한 정책 개발 대신 김 감독의 방송에 출연하는 쪽을 택했다. 복잡한 민생 법안을 설명하는 것보다, 카메라 앞에서 “이번 선거는 원천 무효입니다!”라고 선명하게 소리치는 것이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내 권력을 잡는 데 훨씬 쉽고 빨랐기 때문이다. 온건파들의 목소리는 비겁한 타협이라며 묻힌 지 오래였다.
국밥집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형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선관위에서 해명 자료도 냈고 법원에서도 증거 보전 신청 받아들여서 조사한다잖아. 국가 기관이 조사한다니까 좀 믿고 기다려봐.”
“형님, 그걸 믿으세요?”
민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선관위고 법원이고 이미 다 저쪽 끄나풀들이 장악했는데 그 발표를 어떻게 믿습니까? 애초에 의도된 음모고 조작이라니까요?”

이제 사람들은 눈앞의 사실이나 국가 기관의 권위를 믿지 않았다. 단순한 행정적 미숙이나 실수가 발생해도, 이미 상대 진영을 ‘절대 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악마의 정교한 덫으로 해석되었다. 기관의 발표를 믿지 않는 이들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사회는 어떤 선거 결과가 나와도 불복과 혼란이 무한히 반복되는 악순환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너 진짜 말이 안 통하는구나.”
형석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차갑게 굳었다.
“형님이야말로 저 눈먼 정권에 속고 계신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인간들을 지지하는 사람을 제 형님이라고 믿고 살았는지 모르겠네요.”
민우 역시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단순히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수준이 아니었다. 이제 두 사람에게 상대방은 ‘생각이 다른 이웃’이 아니라,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적’이었다. 뉴스에서는 국민 10명 중 9명이 정치적 분열이 심각하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서로를 향해 마음의 문을 쾅 닫아버린 뒤였다. 지독한 정서적 양극화의 벽이 오랜 선후배 사이마저 갈라놓았다.
끝나지 않을 굴레
민우는 결국 밥을 반도 비우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겠습니다”라는 짧은 인사 뒤로, 식당 문에 달린 종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홀로 남은 형석은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번 6월의 혼란은 선거철이 지난다고 해서 쉽게 꺼질 불씨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은 민우에게 끊임없이 증오를 배달할 것이고, 정치 자영업자들은 그 증오를 먹고 더욱 비대해질 것이며, 무너진 신뢰 시스템은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총선은… 아니, 그다음 선거는 또 어떻게 치르려고 이러나.’
더욱 정교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반복될 미래의 갈등이 떠올라, 형석의 등 뒤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국밥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 전후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불복 집회, 그리고 미디어와 정치권의 극한 대립은 다음 총선뿐만 아니라 그 이후까지도 지속될 장기화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보는 데에는 세 가지 명확한 이유가 있다.
1. ‘돈과 권력’이 되는 확증 편향 비즈니스
과거의 정치 갈등은 주로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에서 왔지만, 지금의 갈라치기는 철저한 수익 모델이자 권력 유지 수단으로 바뀐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자극적인 음모론과 극단적인 혐오를 생산할수록 조회수가 오르고 후원금이 쌓이는 유튜브의 구조로 타협과 통합은 그들에게는 ‘매출 감소’를 의미한다.
정치권은 지지층을 극단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복잡한 정책 대결보다 표를 모으기 훨씬 쉽고, 당내 권력 투쟁에서도 선명성 경쟁을 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온건파가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극단적인 좌우의 대립이 극으로 향해가는 현상을 보인다.
2.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붕괴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부실 관리 논란’과 이에 따른 ‘부정선거 주작 집회’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신뢰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행정적 미숙이나 실수가 발생해도, 이미 상대 진영을 ‘절대 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를 단순 오류가 아닌 “의도된 음모와 조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국가 기관(선관위, 법원 등)의 권위와 발표를 믿지 않는 인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떤 선거 결과가 나오더라도 불복과 혼란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3.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의 심화
단순히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것을 넘어, 상대 진영을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인식하는 정서적 분열이 한계치에 달하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8~9명이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면, 향후 더 악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 사회적 현실이다.

지금의 혼란은 선거철에 잠깐 불타오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알고리즘 기반의 미디어 환경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 자영업자들, 그리고 무너진 신뢰 시스템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적인 장기 리스크로 다음 총선은 물론, 향후 정치 일정마다 이 갈등은 더욱 정교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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