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앤블러는 뉴스비평 카테고리가 추가 되었읍니다.
- 📢 깊이 있는 지식과 감각적인 취향이 머무는 곳, 앤블러(ANBLER)에서 새로운 영감을 만나보세요.
- 📢 새로운 시선과 깊이를 더해, ANBLER POST는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앤블러는 함께 성장할 기업·제/상품을 기다립니다. 📩 문의: admin@anbler.co.kr
- :
- :

작가 존 케닉(John Koenig)의 『모호한 슬픔의 사전(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에서 처음 정의된 신조어로, 스쳐 지나가는 모든 낯선 이들도 나 자신만큼이나 복잡하고 생생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임을 문득 깨닫는 순간의 심리적 감각을 뜻한다.
– 손더(SONDER)의 의미와 정의
📋 열쇠를 삼키는 공간 왜곡자, ‘그림자 까치’

분명 3초 전까지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차 열쇠나 무선 이어폰 케이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가방을 뒤집고 소파 쿠션을 들추며 10분간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서야, 처음 찾기 시작했던 그 식탁 정중앙에서 보란 듯이 물건이 나타난다.
이것은 건망증의 소치가 아니다. 집안의 가구 그림자 틈새에 서식하는 ‘그림자 까치’의 장난이다. 이들은 반짝거리거나 손에 착 감기는 작은 물건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차원 생명체다. 인간이 잠시 시선을 돌리는 1초의 틈을 타, 그림자 까치는 물건을 낚아채 자신의 비밀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는다.
하지만 이들은 법을 잘 지키는 도둑이라 물건을 영원히 훔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 당황해서 이마를 짚고, 허둥지둥 온 방을 헤집고 다니는 그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감상하며 도파민을 채울 뿐이다. 충분히 재미를 보고 나면, 인간이 “어라? 아까 여긴 분명 없었는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슬그머니 원래 자리에 물건을 뱉어놓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 킥킥거린다. 다음번에 물건이 사라진다면 화를 내지 말고 허공에 대고 “다 봤으니 이제 돌려줘”라고 나직하게 말해보라. 그럼 찾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 세탁기 뒤편의 양말 연합

민우는 빨래를 갤 때마다 늘 같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분명 짝을 맞춰 넣은 발목양말 한 켤레 중, 왜 언제나 ‘왼쪽’ 혹은 ‘오른쪽’ 하나만 사라지는가.
어느 일요일 오후, 건조기에서 꺼낸 스트라이프 양말이 또 홀아비 신세가 되자 민우는 세탁기 뒤편의 비좁은 틈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샅샅이 뒤졌다. 틈새 깊숙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손끝에 닿은 건 작고 딱딱한 플라스틱 문손잡이였다.
벽면의 걸레받이 아래, 가로세로 5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쪽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조심스레 들여다본 그곳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 사라졌던 수십 켤레의 양말들이 마치 침낭처럼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었고, 몇몇은 벽에 기댄 채 작은 빨래집게를 테이블 삼아 둘러앉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3년 전에 잃어버렸던 노란색 수면양말이었다. 그 양말의 발뒤꿈치 부분이 민우를 향해 뻐끔거리며 말했다.
“드디어 들켰군. 하지만 인간, 오해하지 마라. 우린 탈출한 게 아니라 안식년을 보내는 중이다.”
양말들의 설명에 따르면, 세탁기의 탈수 코스가 최고 회전수에 도달할 때 발생하는 원심력과 마찰열이 시공간의 미세한 틈을 비튼다고 했다. 발가락 땀과 하루 1만 보의 압박에 시달리던 양말들은 그 순간을 틈타 세탁기 배수관 뒤편의 ‘양말 자치령’으로 한 짝씩 망명을 신청한다는 것이었다.
“둘 다 사라지면 네가 바로 버려버리잖아? 한 짝만 남겨둬야 ‘어딘가 있겠지’ 하고 남은 짝이라도 보존해 줄 것 아니냐. 그게 우리가 개발한 최소한의 공존 전략이지.”
노란 수면양말의 설득력 넘치는 변론에 멍해진 민우는 잠시 고민하다 조용히 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다음 빨래부터는 세탁망 안에 새 양말 두 켤레를 넣을 때, 슬그머니 섬유유연제 향이 밴 작은 조각 천 하나를 팁처럼 세탁기 뒤로 던져주기 시작했다.

출근길 지하철 환승 통로에는 늘 걷는 속도에 맞춰 벽면의 타일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서른두 살의 평범한 회사원 선우는 그날따라 묘한 충동을 느꼈다.
늘 마시던 습관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카운터 옆 유리병에 담긴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주문했고, 늘 걷던 3번 출구 큰길 대신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던 낡은 빌라촌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아주 사소하고 볼품없는 일탈이었다.
붉은 벽돌담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반쯤 걸었을 때, 모퉁이에서 뜻밖의 가게 하나가 나타났다. 쇼윈도 안에는 온갖 종류의 유리병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문 위에는 낡은 황동 팻말이 걸려 있었다.
‘선택되지 않은 하루들의 보관소‘
이상한 호기심에 이끌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맑은 풍경 소리가 울렸다. 카운터에는 돋보기를 쓴 단정한 백발의 노인이 앉아 손바닥만 한 둥근 유리구를 헝겊으로 닦고 있었다.
“어서 오게. 차를 마시고 골목을 꺾은 손님이로군.”
선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노인은 웃으며 선반에 놓인 투명한 구슬 하나를 가리켰다. 구슬 안쪽에는 뽀얀 안개 같은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매 순간 수많은 갈림길에 서지. 알람을 끄고 5분 더 자는 일부터, 커피 대신 차를 고르는 일, 늘 걷던 길 대신 다른 모퉁이를 도는 일까지 말이야. 자네가 지금 이 골목으로 들어오면서 버려진 ‘평소의 하루’는 어디로 갔을 것 같나?”
노인은 구슬을 정우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서늘했던 유리 표면이 손끝에 닿자마자 미지근하게 데워지더니, 그 안에서 작은 영상 같은 장면들이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 전 정우가 포기했던 또 다른 자신의 하루였다.
구슬 속의 선우는 평소처럼 차가운 커피를 든 채 넓은 대로변을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낯익은 대학 동창을 마주쳐 짧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고,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해 팀장에게 기분 좋은 칭찬을 들었다. 오후에는 커피 쿠폰 열 개를 다 채워 공짜 도넛을 받았고, 퇴근길에는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아주 무난하고 따뜻한 하루였다.
“이게… 내가 놓친 하루인가요?”
선우의 목소리에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늘 가던 길을 갔더라면 오랜 친구를 만났을 테고, 사소한 행운들도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괜히 엉뚱한 골목으로 꺾었나’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찰나, 노인이 부드럽게 구슬을 거두어 가며 말했다.
“아쉬워할 것 없네. 반대로 저 안의 자네는, 지금 이 골목의 고즈넉한 흙냄새와 캐모마일의 은은한 향기를 영원히 알지 못하니까.”
노인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우리의 삶이란 늘 하나의 길만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네. 그러니 선택되지 않은 채 흩어진 수천 개의 ‘또 다른 나’는 저마다 다른 우주에서 그들만의 미지의 일상을 살아가는 법이지. 그 하루들이 아쉽다고 해서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가치 없어지는 건 아니야.”
가게를 나선 선우의 발걸음은 묘하게 가벼워져 있었다.
평소보다 10분 늦게 회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놓쳤고, 늘 먹던 커피가 아니라 잠을 깨느라 애를 먹었지만, 점심시간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여느 날보다 푸르렀다.
퇴근길, 선우는 다시 그 골목 입구에 섰다. 낮에 들렀던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평범한 빌라의 담벼락만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서운하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밤 꿈속에서, 커피를 들고 친구를 만났던 또 다른 선우를 마주칠지도 모른다. 서로의 알 수 없는 미지의 하루를 궁금해하며, 각자가 걸어온 길의 이야기를 찻잔 속에 띄워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More Stories
아도겐의 추억,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 시리즈”
한국 언론사(일간지)별 성향 분석 [II]
한국 언론사(일간지)별 성향 분석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