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적 없는 이야기, 다시 쓰는 이야기."

계몽주의 두 거장의 〖특별한 우정〗

계몽주의의 두 거장, 데이비드 흄과 아담 스미스는 교리의 도그마에 맞서 서로의 지적 영혼을 깊이 되비추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학문과 인생을 나누며 '인간성'을 증명해 낸 이들의 특별한 삶의 마지막 우정을 POST에서 확인해 보세요! ⏰ [Reading Time: 5분, Video time: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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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POST는 역사적 문헌과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나 사후에나, 나는 그가 인간의 유약함이 허용하는 한 ‘완벽하게 지혜롭고 미덕을 갖춘 인간’의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인물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애덤 스미스 (흄의 추모글 중에서)


“지혜로운 자들의 찬사는 언제나 유익하고 즐거운 법이지만, 네 책에 대해 들려오는 대중의 찬사는 더욱 가슴을 뛰게 하는구나.”

데이비드 흄 (1759년 4월 12일,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 중)


“두 사람의 우정은 서양 지성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아름다운 우정이다. 철학적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통해 더 위대한 사상가로 완성되었다.”

데니스 라스무센 (《데이비드 흄과 아담 스미스의 우정》 저자)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이끈 두 거장,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우정은 단순히 사적인 친분을 넘어 현대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적 동반자 관계로 평가받고 있다. 12살 차이였던 두 사람은 1749년 첫 만남 이후 1776년 흄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7년간 깊은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학문과 삶에 자취를 남겼다.

종교적 도그마(Dogma)에 맞선 지적 연대

당시 스코틀랜드는 종교적 교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흄은 신의 존재나 종교적 기적을 공공연하게 회의적으로 바라보았기에 기독교 교단으로부터 ‘무신론자(Infidel)’라는 낙인이 찍혀 교수직 임용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학계와 사회가 흄을 외면할 때도 애덤 스미스는 흄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조언자였다. 외적으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스미스였지만, 사적으로는 흄의 종교적 회의주의와 관용 정신에 깊이 동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종교적 도그마와 광신주의에 맞서 인간 중심의 세속적 학문(사회과학)을 개척하는 지적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계몽주의가 지향한 ‘인간성’의 증명하는 그들의 우정

1776년 흄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애덤 스미스는 흄의 주치의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형식의 글을 발표했다. 이 편지에서 스미스는 교회의 비난을 받던 흄을 향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그가 살아있을 때나 사후에나, 나는 그가 인간의 유약함이 허용하는 한 ‘완벽하게 지혜롭고 미덕을 갖춘 인간’의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사회적 매장을 각오하고 무신론자 친구를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라 치켜세운 이 추도사는 종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우정이 가진 도덕적 숭고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선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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