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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들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다음 선거만을 생각할 뿐이다.”
— 미국 신학자, 작가제임스 프리먼 클라크(James Freeman Clarke)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유지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결과가 좋다면, 그 과정에서의 비도덕적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운명을 ‘난폭한 강물’에 비유하며,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군주론》에서 그는 통치자의 자질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에 군주는 백성에게 사랑받는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은혜를 쉽게 잊지만, 처벌에 대한 공포는 잊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그를 독재를 옹호하는 ‘마키아벨리즘’의 화신으로만 알지만, 그의 또 다른 저서 《로마사 논고》를 보면 그는 사실 강력한 법치와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화정을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보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로 요약되곤 하지만, 그의 본래 의도는 ‘공동체의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통치자가 짊어져야 할 고독한 책임감’에 더 가까웠다.

홉스는 유명한 저서인 『리바이어던(Leviathan)』에 정치 철학을 핵심 요약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국가라는 공권력이 없는 상태를 자연상태라고 불렀는데, 이 상태의 특징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가지며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하다.
언제 누구에게 공격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 상태의 삶을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며, 잔인하고, 짧다”고 묘사했다. 사회계약과 리바이어던(Leviathan)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회계약으로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무제한적인 자연권을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합의체(국가)에게 완전히 양도하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탄생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바로 성경 속 괴물의 이름을 딴 ‘리바이어던’으로 리바이어던은 곧 국가를 상징하며, 강력한 힘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홉스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주권자(통치자)에게 강력하고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이게도 홉스는 국가의 기초를 ‘개인의 동의(계약)’에서 찾았다. 권위주의적 면모로 질서를 위해 자유를 지나치게 희생했다는 비판을 받고, 이후 존 로크는 홉스의 이론을 비판하며 ‘저항권’을 도입해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정치는 사전적으로 공동체의 갈등을 조정하고 유한한 자원을 배분하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고귀한 활동으로 정리되어 있으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정치는 종종 ‘공익’이라는 가면을 쓴 채, 개별 정치인과 정파의 ‘자기보존’과 ‘이익추구’라는 원초적 본능에 침잠해 있다. 권력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 정치는 추악한 생존 게임으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정치인에게 가장 강력한 자기보존 수단은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복잡한 정책적 대안보다는 상대방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는 증오의 표현으로 외부의 적을 만듦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식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주지만, 사회적 통합은 철저히 파괴한다.
정당 내에서 ‘자기보존’은 곧 차기 공천을 의미한다. 권력 실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생존의 열쇠가 되고, 이 과정에서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정치인은 시민의 대변자가 아닌 권력자의 하수인으로 변모한다.
정치적 영향력은 곧 경제적 이권으로 치환되어 특정 이익 집단과의 결탁, 법의 맹점을 이용한 특혜 제공, 퇴직 후 보장되는 자리 등은 정치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며 사회적 신뢰를 붕괴시킨다.
정치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기득권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보일 때, 시민들은 정치로부터 등을 돌리고, 투표율 저하와 무관심은 다시 정치꾼들이 활개 치기 좋은 토양을 만들기 시작한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공익을 저버리고 자기보존에 급급할 때 가차 없이 비판하고 심판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
정치는 결국 인간이 하는 일로 우리가 정치를 외면할 때, 정치는 가장 탐욕스러운 자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고, ‘자기보존’이 아닌 ‘가치보존’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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